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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리의 육아 이야기/봉봉이 엄마의 태교일기

10개월 만에 만난 나의 소중한 미니미, 봉봉이 출산후기

by 쿠쿠리아가씨 2016. 2. 8.


2016년 1월 11일


오전 11시 즈음 아직 38주 1일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어느때보다 여유롭게 산부인과로 향했다.

사실 정기검진은 화요일이었지만 역아였던 봉봉이가 돌아누웠는지가 너무 궁금해 하루일찍 방문했다.

36주 이후로 쭉 해오던 태동검사도 무난히 마치고 진료실로 입장.

선생님께서는 초산이라 아마도 예정일에 거의 맞춰서 나오거나 그 이후에 나올 확률이 높을꺼라고 말씀하셨지만

혹시나 모르니 많이 움직이지 말고 최대한 누워서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당시 내가 잡아 놓았던 봉봉이의 수술 예정일은 1월 21일

39주 5일이 되는 날 까지 봉봉이를 배 안에 품고 있어야만 했다. 

진료를 마치고 빵집에 들러 우리 봉봉이 크려면 엄마가 많이 먹어야지 ~ 

라는 핑계로 빵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유와 함께 

그렇게 여유로운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3시50분, 한가롭게 침대에 누워 역아 돌리기, 38주 역아를 검색하며 어떻게 하면 봉봉이가 돌아누울까를 고민하던 그때

갑자기 배 안에서 격한 태동이 두번정도 휘몰아 치더니 울컥 하는 느낌과 함께 양수가 터졌다.

아니 사실 그때만해도 양수가 터진건지 태동때문에 방광이 자극받아 오줌보가 터진건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왕창 흘러나오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굴러 내려와 핸드폰을 쥐고 화장실로 향했다. 

속옷과 입고있던 레깅스 바지까지 완전히 다 젖어있었다. 

뭐지... 이게 양수가 터진건가? 출산의 경험이 없었던 나는 양수가 터지는게 어떤건지 몰랐었고 여전히 얼떨떨했다.

카톡을 하고있던 친구에게 뭔가 나왔는데 이게 양수가 터진걸까? 하는 멍청한 질문을 하며 

멍하니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한방울씩 톡톡 그리고 잠시후에는 줄줄 양수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오줌보가 터진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아 진짜 양수가 터졌구나 출산이 임박했구나를 깨닳았다. 

당장 신랑에게 전화를 했고 집에는 나 그리고 양수를 흘리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라봉이와 고양이 나비 뿐

일단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침착했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정말 덤덤했다.


"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 

" 산모님 집에 누가 있나요? "

" 아니요. 저 혼잔데요? "

" 그럼 119에 전화하셔서 타고 5층 분만실로 오시면 됩니다 "


병원 예진실과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119에 전화를 걸어 

" 저기.. 임산분데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 라며 정말 덤덤히 스스로 응급차를 불렀다.

응급차를 불러놓고 화장실을 나와 일단 속옷에 패드를 붙이고 옷을 갈아입었다. 

보통 자연분만을 하면 진통이 약하게 있을 때 샤워를 하고 병원갈 준비를 한다는데 

양수가 터져버린 상황에서 샤워고 뭐고 할 정신이 없었다. 

패드를 붙이고 옷을 갈아입었으나 자꾸만 줄줄 흘러내리는 양수 때문에 갈아입은 옷은 1분도 채 되지않아 흥건히 젖었고 

이때부터 손발이 달달 떨리고 멘탈붕괴가 시작된 나는 일단 대문을 나섰다.

집 앞 중국집 아주머니께서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받고 놀라서 대문을 나오는 나를 붙잡고

오토바이라도 타고 병원에 가겠냐 물었지만 진통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오지 않았던 나는 

" 그냥 양수만 터졌어요. 119 불렀으니 곧 오겠죠. " 하며 애써 태연하게 119를 기다렸다. 

이때 시간이 정확히 4시 양수가 터진지 10분만이었다. 

잠시후 응급차가 도착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응급차에 탑승해봤다며 별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는 사이 병원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진통은 없었고 나는 또 무덤덤하게 응급차에서 내려 내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분만실에 입성했다.


4시 10분, 분만실에는 병원 바로 옆에 사시는 어머님이 벌써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분만준비를 위해 침대에 누웠다.


" 산모님 역아라 자연분만이 안되시고 양수가 터져서 응급 제왕절개 수술 하실꺼에요. 금식하셨어요? "

" 네? 아니요.... 애 낳을 줄 모르고 아까 1시쯤 빵 먹었는데요 "


순간 분만실에 있던 간호사와 시어머님은 웃음이 터졌고 나는 머쓱 해졌다. 

빌어먹을 빵 같으니. 난 정말 내가 오늘 아기를 낳을 줄 몰랐다고!

1시에 먹은 그놈의 빵 때문에 수면마취는 불가능했고 하반신만 마취를 하기로 했다. 

하반신이든 수면마취든 일단 그놈의 빵이 좀 소화 될 동안 대기하면서 수술준비를 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진통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해서 내가 진짜 출산을 하러 온게 맞나 싶었다. 

진통이 느껴지지 않으니 혈관이 약해 주사바늘을 세번이나 찌르는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출산이고 뭐고 저놈의 주사바늘이나 한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4시 50분, 수술준비를 하는 동안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고 

심장이 두근두근 크게 뛰기 시작했고 일하던 신랑이 급하게 도착했다. 

다행히 수술전에 도착해서 얼굴을 보고 들어갈 수 있었다. 

" 오빠 나 수술 무서워 " 

진통이 오질 않으니 수술의 두려움만 남았다.


5시, 대기실에서 수술용 베드로 옮겨눕고 아빠랑 통화를 하며 그냥 갑자기 빵먹고 쉬고 있는데 양수가 터졌다느니 

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자 수술실 들어갑니다. 아빠 마지막으로 인사하세요. 

하는 간호사 언니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진짜 출산하러 들어가는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들었다. 

뭐지... 진통도 없고 그냥 이렇게 양수만 터졌는데 애 낳으러 가는거야? 

오빠의 손을 붙잡고 속으로 수술하기 싫다 제왕절개 무섭다는 말을 되뇌이다 수술실로 들어왔다. 


수술실은 내가 꿈꾸던 분만의 현장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자연주의 출산, 르와이예 분만을 꿈꿨었다.

분만의 현장을 고프로로 촬영하고자 고프로도 한달전에 구매했었는데.... 

오빠가 탯줄을 끊어주고 출산 직후에 젖을 물리고 

봉봉아 엄마 만나러 와줘서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나오느라 고생했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내 눈앞에 닥친 현실은 환한 조명이 켜진 수술실이었다. 삭막했다. 

수술실에 들어와서 마취를 시작했다 다리와 배에 얼음을 대서 마취가 잘 되었는지 확인했다.


" 자 이제 시작할꺼에요. "


마취과 선생님이 수술과정을 이야기해주며 옆을 지켜주셨다.

막상 수술이 시작되자 두려움이 엄습해왔는데 덕분에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반신 마취라 그런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배를 쨌구나 자궁을 찾고 있구나. 뭐 그런 느낌은 다 느껴졌다.

수면마취를 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수면감이 있어 꾸벅꾸벅 졸면서 수술 진행과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 엄마, 이제 아기 꺼낼꺼에요. " 하는 소리에 잠이 번뜩 깼다.

뭔가 뒤적뒤적 그리고 꺼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만실은 다급해졌고 선생님은 엄마 보여주지말고 빨리 신생아실로 데려가라고 하셨다.

졸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몰려왔다. 

우리 봉봉이에게 무슨일이 생긴걸까 무슨일이 일어난걸까? 왜 울지 않는걸까? 

하반신 마취는 아이 꺼내고 나서 엄마 가슴위에 올려준다고 하던데 왜 보여주지 말라고 한걸까?

그렇게 세상밖으로 나오자 마자 안아주지도 못하고 봉봉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분만실 밖에서 대기하던 신랑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간호사가 

뭐라고 뭐라고 다급하게 외치며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아기를 안고 신생아실로 사라졌다고 했다.

정신이 없었던 신랑은 그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아! 우리 아기구나 싶어서 

옆에 있던 다른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봤더니 호흡이 없어 신생아실로 데려갔다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갈수도 있다고 했단다. 


" 엄마 5시 43분, 공주에요. 호흡이 조금 불안정해서 일단 신생아실로 바로 갔어요. 축하해요. "

수술실에 있던 나는 선생님께 그 사실을 전해들었고 잠시 후 다행히 신생아실로 옮겨진 봉봉이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간호사에게 그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수면마취를 하고 수술부위를 봉합했다. 

마취 선생님이 " 이제 수술 마무리할꺼에요. 잠깐 잘께요 " 하셨고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아직 하반신 마취가 풀리지 않아 하체의 감각이 없었고 몽롱한 상태였다. 

그리고 잠시후 드디어 10개월 동안 너무너무 보고싶었던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해왔던 봉봉이와 첫 만남을 가졌다. 



  



자연분만을 꿈꾸던 10개월 동안 봉봉이를 처음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막상 뱃속에 품고있던 내 아이를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수술을 통해 낳아서 더 그랬을꺼다.

" 봉봉아, 엄마야 엄마 목소리 알겠어? 엄마 배 안에서 고생했어. 엄마가 못안아줘서 미안해 " 

봉봉이에게 처음 건냈던 말들이었다. 그 말을 전해주고 봉봉이는 다시 신생아 실로 보내졌고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회복실을 나오니 신랑과 친정식구들 그리고 시부모님이 와계셨다. 

봉봉이를 볼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할머니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덤덤한 척 했지만 수술실로 들어갈때 그리고 아이가 신생아실로 급하게 옮겨질 때 

나도 많이 두려웠던거다. 나에게는 엄마와도 같은 할머니를 보니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를 낳고 첫날에는 뭐랄까 조금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단 한번의 진통도 없이 그냥 양수가 터져 아이를 낳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날 밤 나는 마취가 풀리고 진통없이 아이를 낳은 댓가를 톡톡히 치뤄야했다. 

누군가 그랬단다 자연분만이 고통을 일시불로 결제한것이라면 제왕절개는 할부로 끊은것이라고 

자연분만은 낳는 순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제왕절개는 5박6일 퇴원하는 그날까지도 나를 고통스럽게했다. 

물론 아이를 낳은지 거의 한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수술부위가 욱신거릴때가 종종있다. 

그리고 제왕절개의 가장 큰 괴로움은 아이를 낳은 첫날 회복실에서 봉봉이를 보고

다음날 소변줄을 뺄 때 까지 봉봉이를 볼 수 없었다는 거였다. 하루가 정말 길었다. 

물론 새벽에 마취가 풀리며 몰아닥친 통증 덕분에 아이가 보고싶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잊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힘들었다.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괴로움과 허무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지만 건강하게 세상밖으로 나와준 봉봉이가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 아닌가.

빵먹다 터져버린 양수로 2주나 일찍 만나게 된 봉봉아, 엄마한테 와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10개월 동안 우리의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너무 이쁘더라.

엄마가 나오자마자 안아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더 열심히 먹고 더 열심히 운동해서 돌아눕게 해줬어야하는데 그치?

하지만 엄마가 앞으로 더 잘할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정말 노력할거야.

엄마가 많이 서툴겠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주렴. 많이많이 보고싶었고 만나서 반가워. 

엄마, 그리고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사랑해♥